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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에두아르 르베—자살

by june sky 2026. 1. 11.



책 한권을 읽었다, 제목은 자살. 에두아르 르베라는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나는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홀린듯이 집어 왔다. 비싼 일러스트 혹은 마케팅으로 경쟁을 탄탄하게 하던 작품들 사이 자살은 붉은 단색의 커버와 슬리브 하나로 큰 이목을 끌고 있었다. 난 이 책을 도저히 안집을 수가 없었다. 자살은 꽤나 무거운 주제다. 사람의 감정 혹은 상황이 극한에 다달았을때 나타나는 최상위의 증상이고, 최우의 현상이다. 죽음 끝에 남은 것은 그 사람이 남기고 간 것들과 싸늘한 시체 한구 밖에 없다. 슬픔에 잠긴 눈빛도, 길을 찾으려 방황하는 손짓도, 중심을 잡으려 힘쓰는 다리의 움직임도, 어느새 감정의 상징이 되어버린 심장의 박동도, 생명이라면 당연히 하는 것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죽음은 되돌릴 수 없다. 인류를 몇백년, 몇천년 아니 아마 정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동안 죽음을 뛰어넘거나 이해하려고 했겠지만 이를 성공한 케이스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곧 죽음은 자연스럽게 끝과 절망 그리고 비극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Deathconsciousness에 관한 글에서 말했듯이 죽음은 슬픈 것이라고 보기엔 애매한 부분들이 있다 물론 남겨진 이들에겐 힘들겠지만 결국 넘을 수 있는 시련이고 당연히 찾아오는 자연의 섭리다. 자살은 그를 조금 더 앞당기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깊은 문제도 그 무엇도 아니다, 그저 일종의 탈출 아님 도망이라고 할 수 있다.
에두아르 르베는 그런 점을 자신의 마지막 책 “자살”에 잘 담아 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르베는 서술방식부터 뭔가 다르다. 제2자의 시점에서 대부분의 글을 “너” 라는 인물을 “나”라는 인물로서 설명한다. “너”가 하는 세세한 행동, 생각, 후회, 절망 등등 모든 것을 설명한다. 읽다보면 혹시 내가 너인가? 라고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도 오게 된다, 그럴 때 쯤 책에서 한두번 정도 르베는 너와 나의 만남과 관계에 대해 얘기하며 철저히 선을 긋는다. 그럼 르베는 도대체 왜 “너”를 설명할까? 르베는 전형적인 줄거리를 가진 작품을 쓰는걸 거부하였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자살을 썼다고 한다. 본인도 제3자도 아닌 누군가가 주인공을 설명하는 독특한 서술 방식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꺠져있는 기억의 파편 같은 내용들엔 딱히 연결고리도 인과관계도 시간의 흐름도 보이지 않는다 정말 메시지 하나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단순하고 혼란스럽지만 난 이 글들을 읽으며 매료됐다. 내 The now now and never 리뷰 역시 이 글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한 것이었다. 서술방식 외에도 내용 역시 나에겐 재밌었다. 르베는 시작을 너의 자살로 시작한다 그리고 점점 너의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그 과정에서 르베는 너를 자살의 주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아무도 네 자살에 농담을 던질 순 없었다라고도 말한다. 당연하고도 새로운 관점들을 여러주는 이야기들인데 난 르베가 단 한번도 자살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게 재밌게 다가왔다. 르베는 해코지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해줬다. 이 이야기들은 르베에겐 어떻게 보면 뒤틀린 자화상이라고 말하는게 맞을거 같다. 이 뒤틀린 자화상 속에서 르베는 오히려 자살을 만나 다른 누군가가 된 것만 같았다. 옮긴이는 자신의 에필로그에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자살은 ’너‘와 ’나‘가 삶과 죽음을 가지고 추는 왈츠다.” 자살은 삶과 죽음의 박자를 맞추며 그 균형을 잡고 있다.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 르베에게 자살은 증오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 편안을 위한 탈출이었다. 84페이지에서 르베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살아 있는 너의 육체에 폭력을 가했지만, 죽어서는 네가 직접 가한 것 외에 다른 손상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떻게 보면 쇼라던가 모순처럼 보일 수 있는 이 문장은 정확히 그 자살의 목표를 보여준다. 살아있을때까지에야 자유를 위해 폭력과 자살을 갈망하고 실행했지만 그 뒤에 남은 시체는 곧 유산이자 기억되고 자살 후에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남들이 존중을 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만약 자신을 증오했기에 목숨을 끝낸 것이라면 그런 매개체 따윈 원하지도 않았을거다. 르베에게 자살은 날개였던 것이다. 르베는 인간의 인생과 감정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런 르베가 보기에 인생 뒤에 있는 수수께끼는 절대로 절망과 공포의 어둠만은 아니었던거 같다. 르베는 이 책의 원고를 편집자에게 넘겨 주었고 편집자는 르베에게 극찬을 했다고 한다. 훗날 이 작품은 르베의 대표작이 되고 유명 도서가 된다 하지만 그 사실에 대해서 르베는 모른다. 왜냐면 르베의 생전 이 책을 읽은 사람은 편집자 한명이었기 때문이다. 르베는 자살에 관한 자신의 견해와 표현을 세상에 남기고 정확히 열흘 뒤 자신의 집에서 자살하였다고 한다. 이는 그의 마지막 왈츠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왈츠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려움과 난해 그리고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테리들은 가득하지만 이는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거 같다. 르베는 우리에게 자신을 남겨둔채 자유를 찾아 떠났다.


시간은 나를 지배하고
분은 나를 재촉하고
초는 나에게서 도망친다



나이는 나를 엄습하고
젊은은 나를 떠나고
기억은 나에게 남는다

행복은 나를 선행하고
슬픔은 나를 뒤따르고
죽음은 나를 기다린다

에두아르 르베 - 자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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